[클릭! 이 사람] 그 날을 기다리며 / 심채경, 천문학자

올해는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첫발을 내디딘 지 50주년 되는 해다. 19697 아폴로 11호의 우주인들이 달에 갔다가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는 대한항공이라는 회사가 생겼고, MBC 방송국이 개국했다. 그리고 삼선개헌이 이루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폴로 11호가 성공적으로 달에 다녀온 지 넉 달 만에 아폴로 12호의 달 방문이 또다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은 달뿐만 아니라 여러 행성에 수많은 탐사선을 보냈고, 점차 유럽도 합류했다. 90년대 들어서는 일본이, 21세기에는 중국과 인도가 우주탐사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 흐름에 함께하지 못했으므로 지금까지의 모든 우주탐사 자료는 외국산이다. 그들의 전통은 너그럽다. 통상 1년 전후의 독점 기간이 지나면 관측 자료의 대부분을 공개한다. 탐사에 참여하지 않은 동방 어느 작은 나라의 대학원생도 인터넷으로 내려받을 수 있었다. 모두 남의 나라 국민이 낸 세금으로 남의 나라 과학자와 남의 나라 기술자가 이뤄낸 성과였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싶었다.

대학원생 시절, 미국의 행성천문학회에 가면 한국 학생들을 유독 반겨주는 분들이 계셨다. 그들의 나라가 지금보다 더욱 독보적으로 강했던 시절, 그 국가적 성공 신화에 불을 지폈던 행성탐사를 자랑스럽게 도맡았던 과학자들이었다. 이제는 원로가 된 그들 가운데에는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해 키운 분들이 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면 옆에 앉혀놓고 지갑에서 아이 사진을 꺼내 보여주고, 그 아이의 한국 이름이 무엇인지, 이미 성인이 된 자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자랑스러운지 이야기해준다. 그 아래 세대의 과학자들 중에는 배우자가 어릴 적 입양된 한국계인 경우도 있다.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 다가와서는 한국인인지 확인하고는, 씨익 웃으며 자신이 왜 아시아인 중에서 한국인을 구별할 수 있는지 털어놓는 것이다.

미국의 과학자들이 NASA라는 이름과 그 화려한 우주탐사 이력에 끝없는 자부심을 드러낼 때, 나는 그 영광을 함께 실감할 수 없었다. 아폴로 우주인의 달 착륙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던 시절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우주 사진이라면 과학 잡지와 인터넷에서 질리도록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학회에서 우주탐사선이 막 보내온 새로운관측 자료가 발표될 때, 할리우드 영화의 관객처럼 흥분하고 감동하는 타국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대학원생인 나는 어리둥절해하곤 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달과 행성을 탐사하는 것은 그들에게 국가적 사업이었고, 과학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가옥이나 일제강점기 시절 건축물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연구 주제에 대해 과학 이상의 특별한 애착과 긍지를 느낄 것이므로.

행성탐사를 해본 적 없는 국가의 행성과학자로서 갖고 있던 그 부채감을 어느 날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한국계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유독 내게 다정히 대해주고 지지해주는 미국 학자에게. 그는 조금 놀라는 듯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에게 한 번 더 물었다. 그와 나의 공동연구자 중에는 옛 소련에서부터 활동해왔던, 지금은 우크라이나인이 된 원로 과학자가 있다. 우주경쟁시대 초반에는 소련이 늘 미국보다 한발 앞서나갔는데 아폴로 우주인의 달 착륙으로 인해 상황이 역전되었을 때, 그때도 달 과학자였던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 얘기라면 이미 나눠본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사람을 달에 보내서 기뻤다고 했단다. ‘우리는 미국인도, NASA 관계자도 아닌, 인류 전체였다. 이번엔 내가 조금 놀랐다. 과연 못난 자격지심이었구나.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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