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고 추억하는 유년의 맛 _세발나물부침개

 

20여 년간 이웃을 위해 반찬봉사를 해온 정삼례(66) 씨가 애용하는 봄의 식재료가 있다. 고향인 전남 여수에서 즐겨먹던 세발나물이다. 살짝 데쳐 무쳐 먹어도, 국에 넣어 끓여 먹어도 맛있지만 어린 그녀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건 세발나물부침개였다. 어린 시절의 별미를 이웃들과 나눠먹는 게 이제 그녀의 행복이다.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사는 정삼례 씨는 해마다 봄이 오면 잊지 않고 세발나물부침개를 챙겨 먹는다. 세발나물은 바닷가나 해변가 등 염분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 식물로 ‘갯나물’이라고도 불리는데 새의 발 모양을 닮아서 세발나물이란 이름이 붙었다. 고향인 전남 여수 바닷가에는 세발나물이 지천이었다. 국에도 넣어 먹고 무쳐도 먹지만 어린 그녀가 특히 좋아했던 건 기름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세발나물부침개였다. 삼시세끼 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며 간식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던 시절, 세발나물부침개는 출출한 배를 든든히 달래주는 별미였다.


“일꾼을 둘이나 두고 보리농사를 크게 지어서 밀가루는 넉넉했거든요. 이 무렵이면 어머니가 밀가루를 개어서 세발나물을 넣고 부쳐주셨어요. 시집오기 전까지 저도 농사일을 많이 거들었는데 새참으로 세발나물부침개가 아주 그만이었지요.”

 


스물네 살에 시집와 시작한 서울생활도 50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입맛은 쉬이 변하지 않아 봄이 되면 자연스레 세발나물을 찾게 된다. 동네 마트에서는 찾기 어려워 발품을 팔아 경동시장까지 가서 세발나물을 사와야 하지만 밀가루와 찹쌀을 6:5 비율로 섞은 반죽에 짭짜름한 세발나물과 바지락까지 넣어 부치면 바다 향 가득 머금은 세발나물부침개가 입맛을 돋운다. 그 시절 함께 먹던 찹쌀부꾸미도 상에 올렸다. 통팥소를 가득 넣고 구워낸 찹쌀부꾸미에 산과 들에서 따온 꽃을 얹어 장식을 했는데 오늘은 꽃 대신 쑥갓으로 모양을 냈다. 쫄깃한 식감과 은은하게 퍼지는 쑥갓 향에 자꾸 손이 가는 부꾸미도 그녀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다.


눈뜨면 코 베어간다는 녹록치 않은 서울생활, 그녀는 세발나물부침개와 찹쌀부꾸미 등 추억의 음식으로 향수를 달래며 힘을 내곤 했다. 중매로 만난 7살 위인 남편은 서울에서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선본 지 20일 만에 식을 올리고 그날부로 낯선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이 세들어 살던 단칸방에서 시동생과 시누이까지 건사해야 했지만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때는 다 그렇게 살던 시절이었다.


 

 

20년째 이어가는 봉사의 기쁨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 나도 책 한 권은 될 거예요. 모두들 넉넉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려니 했죠. 그런데 옛날 생각을 하면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요. 직장 다니던 시누이 도시락을 싸줬는데 쌀밥을 못 싸주고 보리를 섞은 게 아직도 미안해요.”


엄마의 마음으로 보살폈기에 시동생과 시누이도 그녀를 진심으로 따랐다. 그러던 중 그녀도 진짜 엄마가 되었다. 슬하에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자식을 낳으니 비로소 삶의 뿌리가 견고해지는 느낌이었다. 크고 작은 고비들도 많았다. 한 번은 온 가족이 죽다 살아난 적도 있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였나? 한창 자고 있는데 새벽에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깼어요. 그런데 머리가 띵하더라고요. 집이 낡아 연탄가스가 샌 거 예요. 큰애가 안 깨웠으면 큰일 날 뻔했죠.”


생사의 문턱까지 넘나들었지만 병원은커녕 동치미 한 사발로 놀란 속을 다스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훌훌 털고 하루를 시작하던 시절. 부지런하고 검소한 덕에 점차 형편은 피었고, 아이들도 크게 말썽 안 부리고 제 앞가림을 할 만큼 반듯하게 자라주었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덜 타게 되자 그녀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항상 봉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여유가 없었거든요. 그렇게 시작한 봉사회 활동이 벌써 20여 년이 되었네요.” 그녀는 일주일에 두 번씩 동네 아낙들과 모여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고 있다. 바닷가 마을 출신답게 꽃게탕, 홍어무침 등의 요리에 일가견이 있어 자연스레 해산물 요리 담당이 되었다. 세발나물부침개도 봄이 되면 꼭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전해주던 음식이다.


아쉽게도 올봄엔 아직 세발나물 맛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멈춘 바람에 그녀의 반찬봉사도 잠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어르신들에게 손수 면마스크를 만들어 나누어 드렸다. 반찬봉사를 쉬면서 몸은 편해졌건만 이상하게도 달갑지 않은 신호가 나타났다. 다리도 저릿저릿하고 허리도 쑤셨다. “봉사회에서 한 번에 500포기씩 일 년에 3번이나 김장을 했거든요. 그래도 끄떡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쉬니까 몸이 아프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하지정맥수술도 받았어요. 아이들도 이제 좀 쉬라고 하더라고요.”


자식들은 칠순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편하게 노후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센터에 다니며 취미생활도 즐기라고 설득 중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이 없다. 하루빨리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병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했던가. 몸이 하나둘 아픈 것도 쉬어서인 것만 같다. 다시 봉사활동을 하며 바쁘게 지내다보면 전처럼 몸이 쌩쌩해질 것 같다. “앞으로 10년은 거뜬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느 이웃의 밥상에 오를 세발나물부침개와 찹쌀부꾸미를 생각하며 그녀의 건강을 기원해본다.

 

 

글 김윤미 기자 사진 한영희

 

 




 



[출처] 샘터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샘터

샘터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