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빛을 편집한다는 것 / 김은주, 유리 공예 작가

오랜 시간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해왔다. 나에게 책은 가장 완벽한 세계여서 글자와 문장들 사이에서 가장 행복했고, 그 사이쯤에서 세상의 모든 일을 감각하고 상상하고 꾸려나갔었다. 편집자로서 만들던 책들이 예술과 디자인에 관한 책들이 많았는데, 그 속에는 특히 더 마음을 끄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다.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이 너무 궁금하고 직접 하고 싶어졌다. 직장 생활 틈틈이 나무공예도 배우러 다니고 가죽도 배우러 다니고 금속도 두드리러 다니면서 점점 글자가 아닌 이런 물성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손을 움직여 노동과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복잡했던 일들, 마음을 어지럽히던 감정의 조각들이 신기하게도 평안히 가라앉았다.

공예라는 경험이 있기 전에도 책 만드는 일이 어쩌면 공예와 비슷한 건 아닐까 가끔 생각했다. 책이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의 세계라면 미련하다 할 만큼의 노동과 시간이 담보되어야 하는 공예도 책의 세계와 참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책과 공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어느 날 편집 일을 쉬면서 유리를 만나게 되었다. 유리는 너무 익숙하고 일상성인 재료이면서도 공예로서의 유리는 또 너무나 새롭고 화려한 분야였다.

그 옛날 중세시대, 종교만이 유일한 세상의 통로였던 그때 성당의 창문이 왜 유리로 만든 스테인드글라스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만큼 유리의 빛은 일상을 단숨에 뛰어넘는 환상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나는 단어를 더듬고 다듬듯이 유리를 더듬고 다듬어 자르고 붙이면서, 유리를 뜨거운 불 속에 넣었다 차가운 물속에서 다듬으며 빛을 품은 이 요상하고 요사스러운 세계에 점점 빠져들었다.

다이몬드에만 잘리고 갈리는 단단함을 지녔지만 아차 하는 순간 와장창 깨져버리는 연약함은 내게 이상한 위안이 되었다. 가장 단단해 보이는 것들이 작은 균열로도 금이 가고 가루가 되는 일은 일상에서 인생에서 얼마나 허다한가. 공허한 위안이나 너무 멀어 보이는 희망보다 유리의 찬란하게 단단하면서도 연약한 두 가지 성격이 나를 더 크게 위로했다.

빛이 될 수는 없지만 빛을 통과시키고 품을 수 있다는 면에서도 유리는 책과 많이 닮아서 만지면서 좋았다. 저렇게 맑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유리를 만질 때마다 꼬박꼬박했다. 차갑고 단단하지만 빛을 만나면 당장에 나를 먼 곳으로 데려다 앉히는 빛의 환상. 책을 읽고 만들면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먼 곳으로 갈 수 있는 책의 그 통로와 놀라울 만큼 닮아있는 유리였다.

그렇게 유리를 시작하고 지속하며 운 좋게도 두 번의 개인전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유리는 책 다음의 나의 온전한 세계가 되었고, 인생의 두 번째 길인 공예가로 살아가고 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뭐든 그릴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추상적인 책의 세계와는 다르게 유리의 세계는 온전히 몸으로 부딪치고 구축해야 하는 물질의 세계다. 정확히 물성을 이해해야 형태와 색이 나오면서도 또 변수를 주어 기대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우연이 만들어질 여지도 남겨놓아야 하는 세계. 그 시간 안에서 나는 매일 가슴이 뛴다.

내가 주로 하는 유리 가마 작업은 700도가 훌쩍 넘는 불가마에서 여덟 시간 녹이고 휴지기를 거쳐 다시 식기를 기다리면 꼬박 24시간이 되어야 색유리가 섞이고 형태가 완성된다. 그걸 또 다른 형태로 만들려면 이런 불과 물 사이를 반복해야 한다. 수많은 단어와 의미 속에 리듬과 변주와 색깔을 만들어내는 일. 빛을 편집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아마도 이런 작업일 것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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