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2020 몇 가지 단상 / 김지원, 화가

한여름 폭염 속 작업실 뒤의 풍경은 잡풀들로 엉켜 뒤덮여버린 강렬한 녹색이다. 낫으로 헤치고 들어가면 잡풀들의 온갖 노란 분자 가루들이 최루탄 가스처럼 날아와 땀이 난 피부에 내려앉아 엉긴다. 가시 있는 풀줄기가 팔뚝을 휘감아 쓰라리게 가는 상처를 남긴다. 실타래와 전선처럼 엉켜 뒤범벅된 풀과 나무들의 지독한 아귀다툼이 만들어낸 녹색 풍경이다. 강렬한 햇빛의 대비 속에서 생존의 무서움을 본다.

머리를 펑키하게 빗은 딱따구리 한 마리가 작업실 서쪽 벽에 붙어 드라이비트 벽을 앞뒤로 아주 맹렬하게 쪼고 있다. 며칠 사이 아주 동그란 구멍을 뚫어 스티로폼을 함박눈처럼 마당으로 쪼아 내린다. 뾰족한 머리 스타일을 한 딱따구리는 주황색, 흰색 목도리를 두르고 연미복을 입은 신사 같다. 작업실 벽의 질감이 갈참나무와 같은 느낌일까? 왜 시멘트벽에 집을 지으려고 한 것일까. 딱따구리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하늘이 파랗던 가을 어느 날, 장마 때만 물이 차는 작업실 마당 구석의 작은 연못에서 뱀에게 쫒기는 개구리가 물속으로 점프해서 살아나는 광경을 목격했다. 다음날 연못가 돌 틈에서 뱀이 개구리 숨통을 조이는 장면과 개구리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 막대기로 쳐 개구리를 살렸다. 꾸엑! 하며 개구리가 숨넘어가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다음날 그 뱀이 물도 별로 없는 연못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이후 나는 그 개구리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개구리와 뱀의 쫓고 쫓기는 장면… 누구나, 우리 삶도 이와 같다.  

화려하게 꽃 피우는 시간도, 겨울 풍경 속에서 이슬 맞아 녹아내려 스러져가는 것도, 인생에서 대등하게 가장 아름답고 멋진 순간이다. 붉은색과 회갈색의 대비. 정말 볼만한 풍경 중 하나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장대한 대자연의 장엄함이 아니라 작업실의 작은 맨드라미 밭에서 모든 에너지를 여름철 꽃을 피우기 위해 모진 애를 쓰고, 11월, 12월, 1월 솜털처럼 가볍게 바싹 말라버린 잡풀과 맨드라미가 만들어낸 겨울 풍경 속에서 숭고함을 느낀다. 거대한 풍경이 아니라 시야에 들어오듯 줌렌즈로 당겨서 좁혀진 크기의 풍경이다.

과연 바람이 있는 풍경을 어떻게 그릴까? 화가는 바람이 있는 것처럼 그리지만, 그림 속에 바람은 없다. 작업실이라는 고립된 공간 속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은 말이 없다. 화가는 무언의 행동을 매일 반복한다. 조선 시대 볼만한 옛 서체,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자화상, 능호관 이인상(李麟祥, 1710~1760)…. 드로잉은 시간, 생각, 믿음이다. 계속 바라보며 생각하게 되고, 한참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그리게 된다. 그림은 그렇게 시작된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로 닿을 수 있는 굴업도는 아름답다. 노란 백사장만 보이는 납작한 수평의 섬이다. 모든 섬에서는 조건 없이 1박을 해야 한다. 낮과 밤, 새벽과 석양빛, 바람과 냄새가 시시각각 다르므로. 선실에 누워 단잠에 맡은 엔진 기름 냄새도 기억한다. 인가가 보이지 않는 부두에 도착하니 트럭 짐칸으로 가라고 해서 엉겁결에 탔다. 언덕 너머 첫 집에서 우리를 택배처럼 내리라고 한다. 거짓처럼 희한하게 점심밥이 차려져 있다. 어제 전화로 “그냥 오시면 됩니다”라는 헐렁한 예약을 했기 때문이다. 정말 착한 백반이다. 점심도 저녁도 다음날도 잊을 수 없는 밥상이다. 부지런한 아주머니의 음식 만드는 속도와 솜씨에 감탄한다. 흐드러지게 핀 맨드라미를 붉은빛이 아닌 청화 백자색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굴업도에서 가져온 사슴뿔을 사인처럼 그려 넣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1961년생. 인하대학교,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조형 미술학교(슈테델 슐레)졸업. ‘캔버스 비행’(pkm 갤러리, 2019)외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 現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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