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박노정 찾기 / 주철환, 프로듀서 · 前 대학교수

‘목표는 한 명의 남자’(The mission is a man).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이 한 줄로 요약된다. 상영 시간 170분 동안 오로지 라이언(맷 데이먼)이라는 병사 한 명을 찾는 데 집중한다. ‘왜 저토록 목숨 걸고 찾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그토록 찾아내야 할 이유가 있었네’라는 공감에 이르는 과정이 영화의 기승전결이다.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 <김종욱 찾기> 역시 ‘목표는 한 명의 남자’다. 7년 전 인도 여행에서 처음 본 ‘한 명의 남자’를 다시 만나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이 스토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저러지’라는 의문이 살짝 들긴 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대사와 노래로 100분이 금세 지나간다. 여기에 ‘첫사랑 찾기 주식회사’까지 동원되어 관객에게 예상 못 한 재미를 선사한다.

나에게도 개인적으로 찾고 싶은 ‘한 명의 남자’가 있다. 이름부터 밝히자면 그는 박노정이다. 대본 속의 김종욱은 ‘숨이 막힐 만큼 수려한 외모에 깊고도 낭만적인 목소리’의 소유자인데 반해 기억 속의 박노정은 수더분하고 조금 느린 어투의 시골 청년이다. 어쨌든 김종욱은 픽션의 산물이지만 박노정은 실화 속 인물이다. 

이야기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여름은 내 인생에서 유난히 길고도 뜨거웠다. 불과 며칠 전까지 모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스물여섯 살의 나는 육군 제2훈련소의 신병으로 입소했다. 한 마디로 대책 없는 변신이었다. 체중 미달로 무려 네 번이나 징병검사를 받은 기구한 청년이었다. 훈련소에서 주민번호나 학번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직 계급과 군번이 인식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군번줄에 인식표를 단 게 아닐까. 

박노정 훈련병은 나랑 군번 하나 차이였다. 맨 끝 숫자에서 더하기 빼기 1의 등차수열이어서 훈련소 내내 붙어 다녔다. 나이는 그가 나보다 한 살 위였다. 늦게 온 사연을 들어보니 그는 법대를 나와서 대학원까지 마친 고시 준비생이었다. 우리의 겉모습은 그야말로 도긴개긴이었다. 내가 어벙하다면 그는 꺼벙한 외모의 소유자라고나 할까. 하지만 군대 적응력은 크게 달랐다. 한마디로 그는 FM이었고 나는 그냥 F였다. 훈련 기간 내내 나는 고문관이었고 그는 모범훈병이었다.

여기서 장면 전환이 필요하다. 나는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는 제목으로 책까지 낼 만큼 만남과 인연을 귀히 여긴다. 무려 40년이 지났는데도 꾸준히 자대 동기들과 연락하며 지내는 게 내 자랑거리다. PD 시절에 <우정의 무대>라는 군대 프로를 연출했는데 ‘무대는 사라져도 우정은 영원하다’는 게 내 지론이다. 올해는 입대 40주년이라서 우리만의 특별한 ‘프로그램’ 하나를 기획했다. 주도면밀한 캐스팅 작전으로 입대 기념일인 7월 30일에 자대 동기 9명 중 6명을 한 자리에 모으는 데 성공했다. 나머지 3명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나는 마음에 품고 있던 한 사람의 얘기를 꺼냈다. 나보다 군번 하나 빠른 박노정씨, 진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더니 동기들이 무슨 사연이냐고 물었다. 나의 비상한 기억력은 뙤약볕과 소나기가 교차하던 논산으로 진격했다. 

감사한 건 잊어버려도 억울한 건 안 잊어버리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드라마에도 은혜 갚는 사람보다 복수하는 사람이 많다. 훈련소에선 소대원 하나의 잘못으로 단체 기합을 받는 일이 잦다. 나는 정말이지 민폐 중의 민폐였다. 발은 많이 느렸고 손은 많이 모자랐다. 장마철이어서 비가 자주 내렸는데, 그때마다 우의를 걸치는 일이 특히 나한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그걸 눈치채고 항상 자기보다 먼저 내 우의를 격식에 맞게 입혀주었다. 바느질도 스스로 해야 하는데, 그는 심지어 내 군복의 단추까지 달아주었다. 내게 박노정은 연무대 수호천사였다.

“고시 준비생이었으니 지금 법조계에 몸담고 있지 않을까.” 그 한 마디로 ‘박노정 찾기’의 노정(路程)이 시작됐다. 인터넷에서 이름을 찾고 사진을 보니 아, 그 사람이 분명하다. 이렇게 쉽게 찾을 줄이야. 마음만 있고 실행이 없던 나는 조심조심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분의 반응은 어땠을까. 고마움을 베푼 당사자는 오히려 기억 못 하는 걸 미안하게 여겼다. 나는 지금 코로나가 수그러들길 기다리는 중이다. 40년 만의 ‘박노정 찾기’. 그것의 또 다른 제목은 ‘주철환 훈병 구하기’가 아닐까.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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