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자국] 배움의 발자국들 / 오지영, 모델

요즘 자주 듣는 질문들. “빵을 집에서 구워? 그걸 어떻게 해?”, “유튜브 편집을 직접 한다고요?”, “요가 지도자 자격증은 운동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만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나 또한 나에게 묻곤 했다. ‘내가 빵을 매일 집에서 구울 수 있을까?’, ‘그 어려운 편집을 어떻게 해, 보기만 해도 머리 아파.’, ‘나처럼 딱딱한 몸을 가진 사람은 요가와는 거리가 멀지.’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찰라, 설렘과 동시에 나를 찾아오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짜증을 만나는 일이 두려웠고, 몇 번 시도하다가 그만두게 되는 게 싫었다. 사실 자꾸 포기하는 나약한 나를 만나는 일이 가장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빵을 만들기 위해 처음 발효종을 만들었던 때도 그랬다. 4일 만에, 5일 만에 건강한 발효종을 만든다는 얘기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말해주듯이 발효종 병 속에는 까맣게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이를 걷어내고 매일 밥 주기를 지속하면서 내가 왜 이걸 계속하고 있는지, 이렇게 시간만 또 낭비하다 말겠지 하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3주를 헤매던 어느 날 아침, 병이 넘치도록 발효종이 힘차게 부풀어 올라왔다. 그동안 제대로 하는 건지, 옳은 방향으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실망과 짜증이 치솟았는데, 오랜 고생에 대한 대가처럼 발효종이 부풀어 오른 것이다. ‘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싶은 순간들을 돌아보면, 오히려 발효종의 성질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된 값진 시간이었다. 

편집일도 그랬다. 쇼핑이나 SNS 정도나 할 줄 알았지 컴퓨터를 잘 몰랐던 나는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다. 이 많은 단축키는 어떻게 외우며 이 막대기들은 다 뭐란 말이냐.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부딪혀보기. 아무것도 모르니 무식하게 부딪혀본다. 숙련자는 5분이면 충분한 일을 며칠을 좌절하고 화내며 배워나갔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냥 부딪혀보자’ 하는 심정으로.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손가락의 움직임이 자판에 익숙해지고 온종일 걸리던 일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배우는 일은 다 그런 듯하다. 새로운 일은 늘 막막해서 신경이 곤두서고 어깨 근육에 경련을 일으킨다. 하지만 도전하며 배우고 나면 별거 아니었음을, 그냥 편안히 진득하게만 해나가면 되는 것임을 나중에서야 깨우치곤 한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어떻게 첫발자국을 떼며 걸음마를 배웠는지, 어떻게 말하고 옷을 입기 시작했는지…. 그 과정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그 별거 아닌 일들이 참으로 힘들게 배운 것임을 깨닫는다. 어른이 된 지금도 새로운 일을 배우는 데 안간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 그렇게 이뤄낸 것들이 제법 익숙해져서 별거 아닌 일이 되어간다. 어차피 배워야 할 일이라면 혹은 하고 싶은 일이라면, 경직된 마음 대신 차분하게 천천히 관찰하고 아직 잘 못 하는 나를 위로해가며 해나가는 것이 어떨까. 

누군가 그랬다. 무언가를 이뤘다면 얻어낸 것이고, 그 일에 실패했다면 깨우침과 교훈을 얻을 것이니 윈윈게임(win-win game) 아니냐고. 실패해도 잃을 게 업는 ‘되는 장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꼭 해내야 한다고, 그 경지에 닿아야 한다고 하기보다는 ‘이렇게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언제가 거기 그 위에서 그것참 별거 아니었구나’ 싶은 날이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인생의 대부분은 배워가는 것이라는데, 매일 스트레스에 쌓여 산다면 인생이 너무 안쓰러울 테니. 느긋한 마음으로 도전하는 요령을 알아간다면 그 두려움으로 남들이 가지 못하는 길을 여유롭게 산책하듯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내가 배워가는 모든 첫발자국은 즐거운 산책의 시작이 될 것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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