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크러시 래퍼가 삶의 장애에 대처하는 자세



사랑도 그러한 것처럼 음악도 타이밍이다.

시도해보고 싶은 음악이 생겼을 때 주저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래퍼 치타를 보며 내린 결정이다.

 

글 한재원 기자

사진 이권호

 

‘이래선 안 돼 what? 저래선 안 돼 why? 너 님은 뭔데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주눅은 안 들어.’

 

최신 디지털 싱글곡 <개Sorry>의 가사로도 짐작되듯 래퍼 치타(30)는 자신의 행보에 걸린 뜻밖의 제동에 좀처럼 주춤하지 않는 뮤지션이다. 이번 <개Sorry>가 한 방송사로부터 속어를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심의 부적격 판정을 받았을 때도, 데뷔 8년 만에 발매한 첫 정규앨범의 열여덟 곡 중 열두 곡이 같은 이유로 방송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던 2년 전에도 그녀의 입장은 가사를 수정하지 않고 기존 버전을 고수하겠단 것이었다. 음악에 관한 규제에 몸사리지 않는 건 자신의 메시지를 지키려는 뮤지션의 자존심에서 비롯된다.

 

“예술이잖아요. 표현에 제약이 없어야 해요, 예술은. <개Sorry>에는 과거의 저를 비롯해 방황하는 이들을 격려하는 뜻을 담았어요. 조언해주는 누군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넌 지금 이대로도 잘 살고 있는 거라는 말을 이왕이면 기억에 남게 하고 싶었죠. 제 나름대로 좋은 의도를 갖고 전하는 이야기인데 방송사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바꾸고 싶진 않아요.”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듯 보이는 치타의 언어는 목표에 얽매이지 않아서인지 직관적이다. 에둘러 말하지 않아 속 시원한 가사는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지 못했던 젊은 청춘들의 답답함을 해소시켜주면서 ‘걸크러시 래퍼’라는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래퍼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랩핑하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그녀의 랩에서는 한 차원 높은 에너지가 감지된다. 흔들림 없는 발음은 빠른 비트에도 가사를 또렷하게 귀에 꽂고, 목소리에 배어 나오는 당당함은 허스키한 음색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항상 현재 내 감정과 생각을 빠르고 정확히 받아들이려 한다”는 그녀에게 당당함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때 생기는 일종의 여유일지 모른다. 설사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해도 그녀는 끊임없이 답을 구해 기어코 마음이 100퍼센트 쏠리는 지점을 찾아내고야 만다. 파격적인 숏컷으로 화제를 모았던 <언프리티 랩스타> 출연 당시, 연달아 네다섯 번이나 머리카락을 자르며 헤어스타일 하나도 완벽히 마음에 들기 전까지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그녀이니 음악에 관해선 얼마나 더 정확한 타이밍을 노릴지 알 만하다.

 

압도적 퍼포먼스의 래퍼

 

 

“얘기하고 싶은 내용이 명료해지면 머릿속에서 계속 표현을 생각하다가 준비가 됐다 싶을 때 가사를 써요. 잘 써지지 않을 땐 데드라인을 미뤄서라도 기다려요. 밖으로 나올 준비가 되지 않은 제 속의 말들을 억지로 끄집어내고 싶지 않거든요. 대신 가사뿐만 아니라 무대연출에 있어서도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욕구가 일단 생기면 꼭 시도하려고 노력해요.”

 

스스로를 ‘도전 중독자’라고 망설임 없이 정의하는 그녀가 이제껏 선보인 무대들은 하나같이 실험정신이 돋보였다. 그동안 출연한 TV프로만 봐도 <쇼미더머니><언프리티 랩스타><굿걸> 등 음악적 기량의 치열한 시험대가 되는 경연 프로들이다. 그중 <킬빌>에서 선보인 무대는 그녀가 래퍼로 활동해온 10년 동안 가장 참신하고 예술적인 무대로 평가받는다. 기승전결이 명확히 드러나는 댄스나 의상을 찢는 격정적인 퍼포먼스가 좌중을 압도했던 리믹스 무대들은 한 편의 뮤지컬이나 행위예술을 방불케 해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원하는 것을 실현시키려는 의지가 남달리 강한 것이 치타의 경우에는 유독 다행스럽게 비춰진다. 여성 래퍼의 불모지였던 국내에 힙합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독보적인 래퍼를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문턱에서 그녀를 구해주기까지 했기 때문이다.그녀 나이 열일곱, 일상이 평온히 흘러갔다면 뮤지션을 꿈꾸던 ‘소울메이트’ 멤버들과 여느 날처럼 부산 서면역 근처에서 즐겁게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 무대 대신 그녀가 있었던 곳은 차가운 병상이었다.

버스에 치이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친 그녀가 당시 소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뇌수술의 경우 살 확률과 함께 장애를 얻을 확률도 높았고, 인공 뇌사는 장애 확률은 낮았지만 살 확률도 낮았다. 부모님의 어려운 선택 후에 약 2주간 코마 상태에 빠졌다가 천만다행으로 의식을 되찾았지만 극심한 두통으로 두성을 쓰지 못하게 되어 노래 대신 랩을 하게 되었다는 것까지가 익히 알려진 래퍼 치타의 이야기다.

 

“코마에서 깨어나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처음 한 말이 ‘나 이제 노래도 못하게 됐어. 그럼 왜 살아났어?’였어요. 암흑 속을 헤맬 때 빨리 일어나 노래하고 싶단 바람으로 의식을 찾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어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얻은 소중한 삶이기에 절대 지루한 시간으로 채우고 싶지가 않아요. 저는 음악하기 위해 살아났다고 생각해요.”

 

무대 위 그녀는 비트에 감싸인 순간을 온전히 만끽한다는 것이 느껴질 만큼 열정적이다. ‘치타는 숨 쉬듯이 편하게 랩해서 대단해 보인다’ ‘무대가 펼쳐지는 6분 동안 1초도 집중하지 못한 순간이 없다’ 같은 애정 어린 후기가 줄을 잇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치타라는 래퍼가 도전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무대 위에서의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진정으로 도전을 즐기는 법

"무대가 끝나고 나서 아쉬움을 갖지 않는 편이에요. <킬빌>에서도 모든 무대가 너무 만족스러웠고, 영화 <초미의 관심사>에서 처음 해본 연기도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기애가 너무 강한 건가요? 하하. 그런데 제가 말하는 ‘잘했다’는 의미는 실력에 대한 얘기가 아니에요. 새로운 재미를 느꼈으면 그것으로 제 자신에겐 잘한 일이거든요.”

 

‘내게 에이(A)라면?’이란 랩 가사가 주어진다면 아마 치타는 ‘다른 점수 다 오케이’라고 라임을 맞출 것 같다. 오로지 ‘내가 충분히 즐겼는가’만이 평가 기준이기에 그녀는 타인이 부여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꽤 관대하다. 자신의 음악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도 존중하여 크게 반감을 갖지 않으며, 반대로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하며 곡에 대한 리스너의 해석을 기쁜 맘으로 받아들인다.

 

“제 곡을 더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주는 참신한 해석을 보게 될 때 희열을 느껴요. 다른 이의 생각으로 내 음악이 새로운 의미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지 않나요? 제게 굳어진 이미지도 굳이 깨고 싶지 않아요. 제 여러 모습 중 걸크러시한 매력을 인상적으로 봐주신 거잖아요.”

 

인터뷰 후 진행된 사진촬영에서 그녀는 포토그래퍼가 요청하는 위치뿐 아니라 다른 위치에서도 자신감 있게 여러 포즈를 취해보였다. 자신이 맘에 드는 지점에 섰을 때 더 많이 웃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 본인이 원하는 걸 덧붙여야 만족하는 사람, 그래서 누군가의 디렉팅이 필요치 않은 자기 삶의 유일한 감독. 그녀가 원하는 자신에 대한 정의는 따로 있겠지만 제삼자의 해석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을 얼굴이 눈에 선하다.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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