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이름이 된 탑


마을보다 탑이 먼저 있었는지도 모른다

덜 자란 두 그루 소나무를 굽어보는

의젓한 탑신의 무게

하늘이 낮게 드리웠다

 

추사의 세한도보다 석탑은 더 오래

풍장의 겨울을 온몸으로 견뎌왔다

어느새

눈발 그쳤지만

새들은 가고 없다

 

 

카메라 렌즈는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를 그대로 찍어냈다. 추사 김정희가 1년 중 가장 추운 날을 그렸다는 세한도에는 추운 겨울 황량한 들판 위에 초라한 집 한 채와 소나무 두 그루가 속절없이 서 있다. 그림 속 나무 사이사이에는 차가운 바람이 감돌고 있는 것 같다.

 

탑을 찾아간 날에도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눈발은 그쳤으나 쌓인 눈이 이따금씩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탑리리’라는 이름으로 보면 어쩌면 마을보다 먼저 탑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탑은 몇 번의 겨울을 겪어냈을까. 그 오랜 세월을 의연히 견뎌낸 오층석탑은 어느덧 마을의 상징이 되었다.

 

작은 언덕 위에 오롯이 선 탑은 연륜에 비해 보존상태가 좋다. 석탑이지만 목조건축의 모양을 띠고 있는데 단층의 지붕돌 귀퉁이가 살짝 들린 것이 그런 특징을 잘 나타내준다.

 

 

이달균(시인)

1987년 시집 <남해행>과 <지평>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으며 1995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시조 창작을 병행해왔습니다. 천년의 말이 깃든 탑의 영감을 700년 전통을 가진 시조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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