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바삭한 추억 한입

 

맏며느리로 시집와 철철이 제사며 집안 대소사를 도맡아온 심재옥 할머니.

손수 제사상을 차리고 대식구의 삼시 세 끼를 챙겨 온 솜씨는
두 딸의 간식에도 발휘되었다. 엄

마의 정성과 사랑이 들어간 수제간식을 어찌 사 먹는 것과 비교할 수 있으랴.

특히나 동태살을 섞어 담백하고 영양만점인 동태감자고로케를

앉은자리에서 몇 개나 해치우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글 김윤미 기자

사진 한영희

 

‘하나를 먹어도 제대로 먹어야지’ 하는 신념으로 음식을 해온 심재옥 할머니(69).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이 미더울 리 없던 그녀는 외식은커녕 아이들의 간식까지 손수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찐빵, 카스테라, 고로케 등 엄마의 수제 간식으로 출출함을 달 래던 두 딸의 모습을 보는 게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엄마 덕분에 밖에서 파는 음식을 사먹은 적이 거의 없어요. 집에 오 면 쑥찐빵, 고로케, 카스테라 등이 늘 식탁 위에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동태감자고로케는 결혼 전까지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간식이에요.”

 

 

큰딸이 좋아하던 추억의 간식 동태감자고로케는 특이하게도 동태살 이 들어가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 고기보다는 생선이 건강에 좋을 것 같아 시도해보게 된 음식으로 아이들이 앉은자리에서 몇 개나 해치우는 모습에 그녀는 자주 고로케를 튀겼다. 동태살은 발라서 고로 케반죽에 넣었고, 내장과 머리는 탕을 끓여 저녁상에 올리곤 했다.

 

“예전에는 일일이 살을 발라내는 게 일이었는데 동태포를 사용하면 간편해요. 오늘도 동태포를 사용하니 한결 수월하네요.”

 

살 바르는 번거로움을 없앴다 해도 한입에 먹기 좋게 소란 크기로 일 일이 모양을 빚는 수고와 하루 정도 숙성을 거쳐야 하는 기다림의 시간은 여전하다. 게다가 튀김옷인 빵가루도 편하게 사서 쓰는 시판용이 아니라 손수 식빵을 갈아 사용하다 보니 결코 간단치가 않다. 이만한 정성이 더해졌으니 바삭하고 폭신한 그 맛을 두 딸이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것이리라.

 

 

동태감자고로케 외에도 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비장의 요리가 있으니 바로 월남쌈이다. 요즘은 흔히 먹는 음식이지만 30년 전만해도 국내에 베트남음식점이 들어오기 전이라 낯선 메뉴였다. 미국에 사는 친지를 방문한 여행길에 맛본 게 계기가 되어 한국에 돌아와 가족은 물론 지인들에게도 만들어주게 된 그녀만의 별미다.

 

돼지고기, 새우, 파프리카, 깻잎, 당근 등 각종 재료 준비에 손이 많이 갈 뿐, 평범하기만 한 조리법으로도 맛의 차이를 만드는 건 그녀의 특제소스다. 미국에서 직접 공수해온 피시소스에 레몬, 청양고추, 양파, 마늘을 곁들인 소스는 재료들을 조화롭게 아우르며 입맛을 돋운다. 미국에 갈 적마다 기념품보다 우선으로 챙겼다는 피시소스. 그만큼 그녀에게 가족들을 먹이는 건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함께 나누는 맛있는 정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원 집에서 서울로 직장을 다니던 그녀는 통근열차에서 연분을 만났다. “출근을 하려면 새벽같이 서울 가는 기차를 타야 했는데 남편도 서울로 학교를 다녀서 매일 마주치게 되었지요.”

 

친정에서는 막내였던 그녀는 5남매의 장남에게 시집가 맏며느리로 서 철철이 제사며 집안의 대소사를 챙겨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신경 써야 할 건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건설업을 하는 남편의 준공식 고사상 도 손수 차리고, 현장 인부들 밥과 새참까지 챙겨야 할 때도 있었다. 아 이들 소풍날이라도 되면 더욱 몸과 마음이 바빠졌다. 두 아이가 자주 학급 반장이나 임원을 맡았기 때문에 선생님 도시락도 싸고, 반 아이들 이 주전부리할 떡을 만드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혼자 쌀 한 말을 쪄서 떡을 만들었어요. 옆에서 아이가 눈을 비비며 졸리다고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반장 엄마니까 그렇게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정성껏 차린 고사상과 밤잠까지 반납하며 싼 도시락이 그녀에겐 남편 내조요, 자식 뒷바라지였다. 그 덕이었을까. 남편의 사업은 점점 번창했고, 아이들도 바르게 자랐다. 엄청난 부자는 아니었어도 마음 넉넉하게 산 세월이었다. 하고 싶은 건 웬만큼 다 해보고 살았다고 자부할 만큼 바쁜 와중에도 장구, 한국무용, 재즈댄스 등을 배우고, 국내와 해외 가리지 않고 여행도 많이 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시동생과 시누가 살고 있는 미국에도 몇 차례씩 다녀왔다.

 

 

“내년에 칠순을 맞아 미국에 가서 친지들과 칠순잔치를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힘들게 되었네요. 요즘엔 TV를 보다가 좋은 곳이 나오면 남편이나 친구들과 다음에 가봐야지 하고 메모를 해둬요.”

 

지난주에는 친구들과 서울 은평구에 있는 진관사의 늦가을 정취가 물씬 나는 경내를 거닐었다. 나들이 길에는 주전부리가 빠질 수 없는 법. 부지런한 그녀가 친구들을 위해 바리바리 싸들고 온 건 쑥개떡이었다. 봄에 캔 쑥을 쌀과 함께 빻아 냉동실에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떡을 만들곤 한다. 나들이 요깃거리로 혹은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때 쑥떡이 참 요긴하다. “얼마 전에는 마트 아주머니에게 쑥떡을 가져다줬는데 잘 먹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갈 때마다 친절하시고 뭐 하나라도 더 껴주시는데 얼마나 고마워요.”

 

남편의 내조, 자식 뒷바라지뿐만 아니라 이웃과 고마움을 나눌 때에도 열심히 먹을거리를 만드는 심재옥 할머니는 일찍이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건 돈보다 맛있는 기억이라는 걸. 그녀에게 음식은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나 다름없다.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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